[등짐쟁이 기파리의 유랑]④ 땅 끝에서 만난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

공룡의 등뼈 같은 암릉
익살스러운 달마대사
생각이 멈추면 보리수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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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 in 정기영 기자] “어서 와, 달마고도는 처음이지?”

지쳐가는 길 위에 달마대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 웃음에 뭔가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답할 힘이 없었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가는 길이 너무 먼 거리감에 걷기도 전에 이미 어지러움과 현기증의 멀미가 시작되었다. 산사로 오르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예상한 숙영지와 거리를 만만히 보고 너무 여유를 부려 늦게 시작한 탓에 달마산 미황사에는 결국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땅 끝 마을 전라 해남의 달마산은 명칭답지 않게 까칠한 바위 능선이 압권이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덕룡산, 주작산, 두륜산, 대둔산의 꿈틀거리는 바위 능선이 도열하듯 늘어섰는데 그 바위산들의 맥이 마지막으로 뭉쳐지는 곳이 달마산이다. 그러니 암릉 산들의 꼬리는 바다에 떨어지기 싫어 사나운 개의 꼬리처럼 치켜 올라가 까칠하기가 이태리 때 타올 보다 더 까실대지만, 벌벌 기면서 오르면 아름다운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무척 좋은 산이다.



달마고도는 이 까칠한 달마산의 미황사를 출발해 미황사로 돌아오는 17.74km의 트레일로 달마산의 7부 능선을 걸어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마치 불자들이 염주를 한 바퀴 돌리듯 이 달마산을 한 바퀴 돌면 깨달음이 내게 있을까. 싱겁게 먹는 식성에 미황사 달마선원에서 먹은 연밥은 공양주의 덕이 넘쳤는지 몇 걸음 걷기 시작하면서 갈증이 났지만 희한하게도 달마고도의 숲 그늘에 들어서면 갈증이 수그러졌다. 목마름보다 그늘의 시원함이 앞섰다.



숲을 나오면 너덜겅을 만나고, 너덜겅을 지나면 숲을 만났다. 너덜겅에 이르면 마치 공룡의 등뼈를 보듯 울퉁불퉁 각진 돌들이 수없이 많이 무너져 내렸고, 그 위를 척추가 지탱하고 있듯 암릉들이 펼쳐졌다. 햇볕이 얼마나 강한지 초록이 짙어진 계절에 초록이 바래 보이기까지 했다. 숲으로 들어서면 이 까칠한 암릉 산에 어떻게 이런 숲 그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걷다 보면 달마고도의 정성이 보인다. 곡괭이와 삽, 호미만으로 돌을 메꾸고 채워서 손으로 다져 오롯이 수작업으로 길을 낸 정성이 이 길에 숨어 있다. 숲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의 흐름에 맡긴 흔적도 더러 있다. 어느 길이든 뭔가를 만든다고 하면 깨끗하게 그리고 최대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요즈음의 길과는 달랐다. 마치 순수혈통을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간혹 부러진 나무가 길에 뻗정다리마냥 널려 있어도 치우지 않았고, 걷는 이는 겸손함을 가리키는 줄 알고 지레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익살스러운 달마대사 몇 분을 만났다. 누가 진짜 달마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새겨진 면면의 웃음을 보니 내 보기엔 다 달마대사였다. 그가 걷는 내게 말을 걸었다. “어서 와, 달마고도는 처음이지?” 그는 내게 사람이 걷는 길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정석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달마고도는 순전히 사람 손으로만 만든 길인 탓에 그 폭이 넓지 않다. 그러니 이 넓지 않은 길에 마주 오는 사람과는 소통과 양보를 해야 온전히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소통과 양보. 인생살이의 가장 기본을 달마고도는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 가르친다.

1km를 걸을 때마다 한 개씩 거리를 알리는 표지목 17개가 나와야 달마고도는 끝난다. 10km를 알리는 표지목 10개째가 나오고 너덜겅을 지나면서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분홍색 이정표가 나왔다. 도솔암 300m. 오늘 목적했던 곳까지 남은 거리다. 잠시 쉬고 올라가는데 언제나 정상 직전은 치받는 고개가 있는 게 정석이라는 듯 마지막 남은 300m가 지친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마음의 거리 3km가 되었다.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길은 사나운 바위 절벽 아래를 아주 길고 느린 갈지(之)자로 휘돌아 오른다.



숫자 세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1, 2, 3… 300. 300이 지났는데도 도솔암이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숫자를 더 센 후에야 도솔암 종무소의 공사장이 나왔다. 먼저 도착한 길벗들은 도솔암 삼거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절벽 위에 세워진 도솔암을 돌아보는 중이었고, 나는 이제껏 지고 왔던 배낭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보다 실망감이 앞서서였다. 내가 이 풍경을 보려고 오후 내내 걸어왔단 말이던가.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조용한 암자보다 관광지가 되기를 택한 공사 현장이었다.

사진발이었어. 목적지를 도솔봉으로 바꿨다. 몸은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쳐 있었고, 마음은 도솔암 삼거리에서 공허해졌으며 발바닥은 불이 났다. 그러는 중에도 땅 끝 바다에 떨어지는 일몰은 놓치지 않으려고 고개는 연신 바다 쪽으로 돌리기 바빴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 실망감을 위로받았다. 도솔봉 임도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찼다. 걷는 내내 옷을 적시고 흐르던 땀이 어느샌가 쏙 들어가면서 몸이 으실대 재킷을 꺼내 입었다. 구름이 도솔봉을 넘나들며 바람을 몰고 왔다가 몰고 갔다. 잠시 쉬며 어떻게 할지 머리를 맞대고 얘기 중에 송지면 개인 콜택시 번호를 보자마자 모든 게 ‘멈춤’이 되었다. 숲, 너덜겅의 반복적인 길을 내일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지루하고 심심해진 탓이다.



우리는 땅끝 송호리 해송 숲에서 머물기로 했다. 기다리던 택시가 오고, 방법이야 어찌되었던 낮에 출발했던 미황사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린 지 한참 후라 관광객도, 산객들도 떠난 미황사 주차장은 조용하고 어두컴컴했다. 차를 출발하려다 하루 종일 땀을 흘려 끈적거리는 몸뚱이가 찝찝해 불이 켜진 지린내가 진동하는 미황사 아래 주차장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나니 그제야 나갔던 정신줄이 되돌아왔다. 지독한 지린내 속에서도 몸을 닦고 시원해하는 서로를 보며 ‘세상 별것 아닌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숙영지로 가는 내내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없다던 우리는 텐트를 펼쳐 놓고 나니 맥주 한 캔에 노곤한 하루를 풀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앉아 있을 수도 없는 피곤함이 몰려와 텐트 안에 몸을 눕히며 떠올랐던 건 암벽에 드문드문 드러난 나무들,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 마치 달마대사의 눈썹 같고, 수염 같고, 털 같았던 달마산의 암봉들과 숲이 지겨워 중탈하고는 생각이 나다니 우스웠다. 잠결에 달마고도를 걸으면서 보았던 한 구절이 지나갔다. ‘달마고도, 생각이 멈추는 그곳에 보리수가 자란다.’ 나의 보리수는 지금 어디에서 자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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