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④ 도대체 떠나기는 할 건가요?

10월 22일 여행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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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물러설 길이 없었다. O씨는 나 보다 두 살이 많았다. 강직하고 정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한 이후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여행준비를 착실히 했다. 함께 떠날 사람들이 정해지자 2014년 초 그는 사표를 냈다. 정년을 3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1월이나 늦어도 2월에는 떠날 예정이었다. 맹세금을 내며 결의를 다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음을 내려놓자 떠나는 날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우리의 마음도 흔들렸다. 새로운 동반자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러다간 나머지 한 명마저도 포기하면 어쩐담?’

이제 떠나느냐 포기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년 간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세계 일주의 포부를 밝혀온 나로서는 포기가 죽기보다 힘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언제 떠나느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사람 만나는 일도 무서워졌다. 이런 사정은 O씨라고 다를 리 없었다.

“형님 일단 떠납시다.”

짧은 말이었지만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아마도 그의 고민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게다. 사표까지 던졌지 않은가.

“그럽시다”

어렵고 긴 시간을 지나 우리는 겨우 한 발짝을 내디뎠을 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떠나는 것이 결정되니 우리 앞에 수많은 질문이 나타났다.

버스는 어떻게 보내지? 운송에 필요한 서류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번호판을 바꾸어야 할까? 보험은 어디서 들지? 사막이나 산중에서 차가 고장 나면 어쩌나? 강도가 많다는데 대책은? 통신은 어떻게 한담? 남미의 자동차연료의 질이 형편없다던데.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A4 지로도 수십장이 넘을 정도였다. 한 동안을 자료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 한 발짝을 내딛기 힘들었다. 이 질문에 답하고 준비하려면 일 년은 족히 걸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5명이 나누어야 할 일들이 두 사람에게 맡겨진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크게 세 분야로 나누었다. ,, 이렇게 3가지로 압축했다. 이제 일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우리가 제일 시급하게 결정한 일은 떠나는 날을 정하는 일이었다. 날짜를 8월로 정했다. 이것은 순전히 우리의 체면 때문이었다. 곧 떠날 것 같아 친지들과 송별회를 한 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격려금까지 준 사람들도 있었다. 길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호랑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어떤 이는 여행 잘 다니고 있느냐며 안부까지 문자로 날려 왔다. 교회도 나가기 싫어졌다. 이미 목사님이 여행의 안전을 위한 기도까지 하셨으니 하나님께도 면목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떠날 시기를 못 박는 일이야말로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비로소 우리는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8월에 떠납니다.’라고.

여행준비의 목적으로 자동차 정비학원에 다녔다. 한 달을 배우고 나서 내린 결론은 내가 자동차를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버스이다 보니 장비가 없이는 어떠한 정비도 어려웠다. 요리학원도 다녔다. 이 마저도 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많은 나라를 단시일 내에 이동하며 제대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수지침도 배웠다. 이 지식은 여행 중의 건강을 위해서는 아주 유용해 보였다.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페루에 도착해서 수지침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를 개선하는 일 또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일 년간 생활해야 하는 장소여서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할 일이었다. 처음 캠핑카로 개조할 생각이었다. 천만 원이 훨씬 넘어가는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두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게다가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일이다. 내부에 많은 시설이 오히려 여행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행을 떠나려면 눈썹도 뽑고 가라지 않던가. 이런 경우 나의 지론은 ‘Less is the Better 적을수록 좋다.’였다.

하루는 차를 수리하기 위해 변두리에 있는 한 정비소를 찾았다. 60대의 친구 두 분이 운영하는 작은 정비소다. 언제나 얼굴이 불쾌하게 취해 계신 분들이다. 낡은 마을버스로 세계 일주를 한다니 놀라신 모양이었다.



“아저씨 이 차를 개조하려고 했더니 돈이 많이 드네요?”

“얼마나 드는데?”

“천만 원이 넘어요.”

“뭐요? 뭘 하는데 무슨 천만 원씩이나 든 데?”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처다 보며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우리가 삼백만 원에 해 줄게. 삼백”

“혹시 술 드시고 그러시는 거 아니시죠?”

“아이고, 이렇게 사람을 못 믿긴. 삼백 넘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니까 하하하”

술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각서를 받았다.

마을버스는 총 좌석이 15개였다. 공용버스여서 설 자리를 만들다 보니 좌석 수가 적다. 게다가 조수석이 없다. 조수석을 추가하고 4석만을 남겨 놓으니 총 6명이 앉게 되었다. 버스의 뒷자리는 모두 떼어내고 마루를 만들도록 했다. 마루는 조립식으로 만들고 판을 떼어내면 수납공간이 되었다. 바닥은 푹신한 스펀지를 넣고 천으로 덮어 별도의 매트가 필요 없도록 만들었다. 성인 남자 5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차 안에서 쓸 전기를 만들기 위해 인버터(전력변환장치)라는 장치도 달았다. 두 개였던 배터리도 4개로 늘렸다. 여행 중 짐이 많아질 것에 대비하여 지붕에 설치대도 만들었다. 지붕까지 오를 수 있도록 사다리마저 달고 나니 제법 여행을 위한 자동차의 면모를 갖추었다. 일이 진행되면서 수시로 정비소에서 전화가 오곤 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것으로 보아 어려운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저어기 말이여. 요즘 알루미늄 값이 올랐다네?”

“그리구 말이여. 사람이 두 명이 와서 일했지 머여?”

삼백만 원에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안 나로서는 예상했던 일이다. 결국, 700만 원 이상이 들고서야 작업이 끝났다.

O씨는 자동차의 반출과 운반에 관한 일을 맡았다. 매사 완벽에 가깝도록 솜씨 있게 일을 처리했다. 버스를 배에 싣고 페루로 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가 컨테이너보다 10센티 정도가 높았다. 바퀴의 바람을 빼 보아도 몇 센티가 높았다. 결국, 벌크선이라는 배에 실어야 했다. 벌크선은 컨테이너에 들어갈 수 없는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이다. 물량이 많지 않아 부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8월의 출발이 어렵게 되었다. 우리의 출발 일정이 10월로 연기되었지만,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 핑계를 대는 일이 지겹고도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개월이 흘렀다. 떠날 준비도 어느덧 마무리 되어갔다. 8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범죄자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아직도 버스를 싣고 갈 배의 일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정신없이 바쁘기를 고대했다. 나를 제발 잊어달라고 말이다. 10월 22일 싣고 갈 배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그만 울 뻔했다.



나는 이 소식을 D 일보의 황 기자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소식을 받은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황 기자는 얼마 전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전면으로 신문에 실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서 8월에 떠난다고 했는데 그날이 지나도 떠나지 않으니 마음고생이 컸다. 그녀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 안 떠나시는 거 아니죠? 그러면 큰일 나요. 제발 떠나세요.’ 하며 통사정을 하곤 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떠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출발 한 달을 남기고 뜻하지 않은 합류자가 나타났다. 그는 여행작가학교 후배인 J였다. 40대여서 5060세대의 여행 취지와는 맞지 않았다. 게다가 여행경험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100kg이 넘는 체구와 여러 가지의 지병이 있다고 했다. 장점도 많았다. 성격이 온순하고 IT 전문가로서 통신기기를 잘 다루었다. 동기들의 강력한 추천도 그의 합류를 재촉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여행 사실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가 합류했다. 그는 나와 가장 긴 시간을 여행했다. 수많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세계 일주를 끝내기 수개월을 남겨 놓고 이란의 수도 에서 귀국해야 했다. 지병이 재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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