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⑤ 여행은 수많은 질문에 답하는 것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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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나라 이름이 길고 어려워서 나는 지금도 이 나라의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란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나라다. 이 나라를 거치지 않고서는 집으로 돌아갈 길이 없었다. 이 나라는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독재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국경사무실에 도착하자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눈을 번뜩였다. 이들의 통제가 어찌나 심했던지 숨이 콱 막힐 지경이었다. 무려 18개의 도장을 찍고서야 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무척 힘이 들고 두려웠다. 성택이가 분통을 터뜨렸다. 임성택은 몇 개월 전 알바니아에서 합류해 여행을 마무리한 유일한 사람이다. 나의 본명이 임성택으로 공교롭게도 그와 한자마저 같다.

“아니! 형님은 도대체 정확한 정보가 이렇게나 없으세요. 좀 알아보고 오셔야죠. 이게 무슨 고생이랍니까.”

그간의 고생을 잘 참아 왔던 그가 결국 불만을 터뜨렸다. 궁지에 몰린 내가 던진 한마디.

“야 내가 뭐 그걸 알았으면 여길 왔겠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그야 그렇죠. 저도 알았다면 여기 안 따라왔을 테니까”

이 이후 어떠한 일을 당해도 그는 내게 불만을 하지 않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 여행 할 나라들의 치안과 제도에 관한 정보였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처음 여행하게 될 중남미만큼 나를 긴장시킨 곳은 없었다. 이들 나라는 마약과 국가 폭력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남미에 사는 교포들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 사실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는 ‘안전하다’라는 대답을 듣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터넷에는 중남미에 관한 흉흉한 이야기가 넘쳤다. 게다가 자동차를 가지고 여행하는 자들의 정보도 아주 적었다. 나는 여행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줄 긍정적인 정보에 목말라 했다.

어느 날 파나마의 교포가 중남미 나라들의 총기 살인에 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보내왔다. 이 기사에 따르면 총기사고로 죽는 세계 1위에서 5위까지의 나라가 중남미에 있다고 했다. 이들 나라는 멕시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이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매일 평균 18.5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정보를 주는 의도는 오지 말라는 것인 듯했다.

나는 이러한 부정적 정보에 대항하기 위한 긍정적인 정보를 모으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니카라과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니카라과는 총기 살인 외에도 외국인 실종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니카라과에 입국하는 즉시 실종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범죄 대부분은 거대한 장기매매조직의 짓이라고 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이와 관련된 통계를 어렵게 구해 보았더니 1970년대까지의 정보였다. 다시 말해 아주 오래전의 통계라는 것이다. 과거 이 나라에는 국적을 바꾸어주는 소위 `국적세탁조직`이 아주 번성한 시기가 있었다. 독일 패전 이후 전범들이 이 나라를 거쳐 남미의 각 나라로 숨어 들어갔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실종통계가 부풀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옳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아주 위험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차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단연 돋보였다. 푸른색의 버스는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은 색이다. 그러니 범죄자들의 눈에 쉽게 띌 것이라고들 말했다. 하지만 이때도 나는 희한한 긍정 논리로 맞섰다.

“네 말도 맞아. 푸른색은 눈에 확 띄겠지. 인정해. 하지만 생각해봐. 도둑놈들이 이렇게 별난 차를 훔쳐다가 도대체 어디에다 팔아먹을 건데?”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면 아마도 한 시간이면 잡히고 말걸? 어느 바보가 이렇게 위험한 차를 훔치겠어?”

차가 특이해서 도둑놈들의 표적이 쉽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섰다. 이 논리는 어느 정도 내 주장이 옳았던 것 같다. 도둑들이 훔치기에는 너무도 위험이 많은 차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눈에 잘 띄니까 표적이 될 것은 분명해. 너희들이 가지고 다니는 장비가 많으니까 조심해야 돼.”

원래 우리는 중국을 여행의 첫 국가로 정했었다. 내가 이 여행을 결심한 것은 2008년 `실크로드의 마지막 캬라반`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터키의 사진작가였던 `아리프 아쉬츠`가 중국의 시안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책이다. 이들은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겪었을 동서 교역의 어려운 여정을 재현하려 했다. 이 여행에 자극을 받은 나는 마을버스와 함께 이들의 행적을 따라가고자 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중국은 우리 여행의 첫 국가였다.

중국에 관한 정보가 모이면서 나는 큰 난관에 부딪혔다. 이 나라는 외국의 차량이 자기 나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장벽을 쌓아 놓았다. 출고 5년이 넘은 중고차는 아예 입국 대상이 되지 않았다. 어찌해서 차를 가지고 들어 온 경우라도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기관에 찻값에 해당하는 금액의 보증금을 위탁해야 한다. 물론 무사히 차가 중국을 벗어날 경우 반환한다는 조건이지만 그 반환의 과정이 매우 어렵다. 게다가 국제운전면허증이 허용되지 않아 중국에서 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 또한, 여행단은 무조건 중국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차는 출고 된 지 10년이 넘었으니 애초에 중국 입국은 불가능한 존재였다.

우리는 미로에 갇힌 쥐처럼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루는 한국에서 사는 중국인 청년이 내게 좋은 방법이 있다며 알려왔다. 일단 차를 해체하여 고철로 중국 국경을 넘은 다음 다시 조립해서 타고 다니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출국할 때도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 방법은 중국 국경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이라고 했다. 공안에 단속이 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중계인 일명 ‘브로커’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웃음이 나왔다.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계획은 중국이라는 만리장성 앞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버세프가 조직이 되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K가 아주 간단한 제안을 했다.

“야 그럼 동쪽으로 가자. 제일 어려운 일을 맨 나중에 놓는 거지. 그리고 ‘해 뜨는 동쪽’ 좋잖아. 희망의 상징 해돋이 어때?” 이 한 번의 발상 전환으로 첫 여행지는 중국이어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났다.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남미로부터 들려오는 부정적인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정보들이 쌓이자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골치가 지끈거렸다. 완벽이라는 놈은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의 의지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 완벽함에 이르는 방법은 가능한 한 정보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다간 여행은 떠나지도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냥 떠나자. 그곳에도 사람이 사는 곳 아니겠는가. 인간의 사는 모습이 어딘들 다르겠어? 그러니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이러한 확신만 하고 떠나자. 그것이 여행 아니겠는가. 아마도 여행은 수많은 질문에 답하면서 나아가는 것인지도 몰라. 정보가 많다 진다는 것은 답을 알고 시험에 치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어? 나는 비로소 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이 생각은 대부분 옳았다는 것이 여행 내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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