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① 일단 저지르고 용기라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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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 in 임택 여행작가]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의 저자 임택 작가. 마을버스로 세계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와 국경없는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실감나는 여행기를 만날 수 있다. 짧은 시간에도 우리는 길을 잃는다. 여행을 해 보니 그 길을 찾게되고 알게 되었다는 그 시간으로 들어가보자. [편집자주]

“나 오늘 마을버스 계약하고 왔다.”

신바람이 나서 건넨 말에 아내의 대답은 나지막하고 무거웠다.

“이제 정말 떠나는 거네?”

아내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순간 저녁 밥상을 마주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랬다.

“얼마 줬어?”

“천이백만 원.”

“싸게 샀네?”

“응.”

“잘했네.”

어마어마한 일의 시작 치고는 싱거운 대화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저녁을 먹었고,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보았다. 수년 동안 귀 따갑게 들어온 아내로서는 ‘마을버스 세계 일주’ 계획이 새로울 것도 없을 것이다. 단지 그날이 실제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잠시 호흡에 엇박자가 났을 뿐이다.

내가 수년 동안 준비해 온 ‘마을버스와 함께하는 세계 일주’ 계획은 이렇다. 낡은 마을버스를 개조해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계 5대륙 48개국을 일 년 동안 여행하는 것이다. 물론 장기 여행인 만큼 비용을 줄여보자는 의도도 깔렸다. 하지만 이 계획이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5년 전 어느 날, 평창동의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오는 마을버스를 보았다. 이 마을버스는 일반 시내버스가 다니기 어려운 작은 마을을 위해 만들어진 버스다. 이 마을버스는 좁고 가파른 길로 다니며 사람을 태워 큰길까지 데려다준 다음 다시 산동네로 되돌아왔다. 마을버스가 본 가장 커다란 세상이라곤 기껏해야 우리 동네 파출소가 있는 2차선 도로가 전부였을 테다. 그러다가 10년 이후 용도가 다 되면 폐차를 시키거나, 마지막 남은 힘이라도 써보라며 형편이 어려운 나라로 팔려나가는 것이 마을버스의 운명이다.



갑자기 이러한 마을버스의 인생이 쉰 줄에 들어선 나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주어진 길을 달려야 했고, 시속 60킬로라는 제한된 속도로 살아야 하는 인생이 나와 닮았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의 삶이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오래전부터 나는 50대가 되면 여행가의 길을 걷는 게 소원이었다. 그때 불현듯 낡은 마을버스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그래, 용도를 다한 마을버스를 잘 고쳐서 저 넓은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는 거야.’ 생각할수록 멋지고 의미 있는 계획이 아닌가.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산은 함께할 동료를 찾는 일이었다. 일 년 간 48개국을 여행하려면 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새롭게 ‘인생 2모작’을 시작하는 만큼 함께 여행할 동지를 5060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찮은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기를 했으나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일 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상 우리나라도 이제는 고령화 사회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감당할 수 없는 폭풍이 밀려오듯 7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수백만 명의 노인이 그보다 훨씬 적은 젊은이들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노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젊은 노인’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는 ‘청년 노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앞으로의 노인들은 지금보다 더 건강하며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50대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등 떠밀려 나와야 하는 현실을 사람들은 매우 불행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를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몸만 건강하다면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50대 아니겠는가. 인생 이모작의 씨앗을 뿌리는 데 있어 충분히 늦지 않은 나이다. 그렇다면 인생 이모작에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한 친구가 있다. 그는 40대 초반에 큰 골프의류 회사의 중역이 되었다. 친구들은 그의 성공가도를 무척 부러워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부유했고, 아이들도 잘 자라서 외국의 유명 사립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 친구는 늘 자랑이 많았지만 누구도 그런 자랑을 탓하거나 흉보지 않았다. 그가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고 주변 사람들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초췌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몇 날 며칠 고민한 얼굴이 역력했다. 그는 임원직을 그만두고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엉뚱하게도 만두, 가게였다. 평소에 만두를 좋아해서 여러 종류의 실험적인 만두를 만들어 식구들에게 내보였는데, 그때마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당신이 만든 만두 정말 맛있다. 만두가게 하면 대박 나겠어. 진짜!”

젊은 나이에 중역이 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은 그의 바람과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한 친구가 만두가게를 열기 위해 성남에 작은 가게를 계약했다. 당연히 부인과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미친 짓이었을까?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비장하다 못해 울상이 되어버린 그의 얼굴을 보니 왠지 미안했다.

“해, 인마! 하면 되지 뭘 울고 짜냐?”

“마누라가 이혼 도장 찍고 하래.”

나는 인생 2모작을 위해 여행가의 길에 들어섰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그 여정에서 느낀 인생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여행가 말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어,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5060세대가 되면 바로 이 일을 시작하리라 다짐하며 살았다. 그때 처음 나오기 시작한 휴대폰의 전화번호 뒷자리를 ‘5060’으로 정한 것도 미래의 꿈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기면, 당장 오늘을 살아가는 법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내 경우에도 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미리미리 달성할 목표를 하나씩 세워두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아내에게 내가 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에 대해 약속했다. 그중 경제적인 대책이 가장 중요했다. 50대부터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열심히 일했으며 낭비를 줄임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다음이 건강이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30대에는 축구, 40대에는 농구로 건강을 다져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꿈을 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 꿈을 멀리하지 말고 늘 자기 곁에 붙잡아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사는 게 현실이다. 꿈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은 삶이 무기력하며 가슴이 뛰지 않는다. 꿈을 이루는 데는 나이가 많고 적음과 관계없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꿈에 도전하는 한 누구나가 청년이다. 청년의 기준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여기, 이제 막 꿈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청년이 당신 앞에 서 있다.



677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자 많은 언론과 미디어에서 관심을 보였다. 한 기자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여행 후 무엇이 달라졌나요?”

“예, 저는 청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도전을 하는 한 나는 늘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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