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숙소는 교포가 운영하는 일종의 민박집이다. 주인은 노래하며 선교 활동을 하는 ‘박우물’이라는 분으로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남미 사정에 밝은 안내자가 필요했다. 그가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인물이다. 우리와 남미 3개월을 동행하기로 했다.
가이드를 구한 것은 다분히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남미가 하도 위험하다고 하니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가이드가 정해지자 가족들은 물론 일행들의 불안감도 줄어들었다.
‘박우물’ 씨는 리마에서 ‘온다 코리아’라는 한류 관련 기획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민박집에서 머물며 여행계획과 은수의 통관 문제를 의논했다. 은수가 도착하기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나는 바로 배낭을 꾸렸다. 여행가의 직업은 여행이다. 한시도 머물 시간이 없다.
나는 첫 여행지로 ‘와라쓰, Huaraz’를 선택했다. 와라쓰는 해발 3,000m에 있는 고산 도시이다. 앞으로 여행을 하자면 고산병에도 내성을 키워야 하므로 안성맞춤의 훈련지였다. 그곳에 ‘69 호수’라고 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해발 4,600m에 있어서 오르려는 사람의 상당수가 발길을 되돌리는 아주 힘든 곳이다. 만년설에서 바로 부서져 내리는 빙하의 물이 고인 곳이다. 이 나라의 호수는 이름이 없단다. 호수의 수가 하도 많아서 이름 대신 번호를 붙였단다.
이른 아침 일행은 69 호수가 있는 입구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69 호수로 향하는 산도로 따라 우람한 산들이 줄지어 있다. 산들은 목이 부러질 정도의 만년설을 가득 머리에 이고 있다. 태양 빛이 만년설에 부딪히더니 검푸른 하늘에 흩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흰 봉우리의 기 싸움이 치열했다. 거대한 산들은 한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지만 차로 몇 시간을 가야 하는 먼 거리다. 맑은 공기가 사람의 눈을 속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다.
언젠가 페루 친구와 산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가 사는 마을 앞에 제법 산세가 우람해 보이는 큰 산이 보였다.

“저건 산이 아니라서 이름이 없어”
“아니 저렇게 높은 산이 이름이 없다고?”
“저 산은 눈이 없잖아. 만년설이 없는 산은 산이 아니라고. 그냥 봉우리야.”
페루사람의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산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산 대신 ‘픽추, Picchu’라는 말을 쓴다. 픽추는 ‘봉우리’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유명한 유적지 ‘마추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졌다. 백두산이 이 나라에 있었다면 동네 뒷산 봉우리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69 호수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어서 오른 길이 요동을 쳤다. 춤을 추니 멀리 보이는 설산도 덩달아 출렁거린다.
“저 설산 봉우리는 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지 않아?”
일행 중 한 사람이 산의 형태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 산의 모습은 다른 산과는 좀 달라 보였다. 대부분 산이 삼각형의 형태를 띠었다면 우리 앞에 펼쳐진 산의 모습은 한 귀퉁이가 뚝 잘려나간 형상이다. 세모처럼 생긴 피자를 한 입 떼어먹은 모습이라고 할까?
“저건 지진으로 산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 거예요.”
“아 그래요?”
“1970년에 이 지역에 아주 큰 지진이 났습니다. 그때 저 산의 북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럼 저 산 아래 동네가 융가이 마을이란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때 2만 명이 목숨을 잃었죠. 아니 100명이 살아남았죠.”
오래전 융가이 마을의 비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1970년 와라쓰 지방에 7.9의 지진이 발생했다. 대부분 산비탈에 농사를 지으며 살기 때문에 그 충격은 컸다. 이 지진으로 해발 6,768m인 ‘우와스카란산’의 일부가 붕괴하여 비극이 발생했다. 붕괴한 만년설과 토사가 호수의 물과 섞여 계곡을 쓸고 내려왔다. 늘 그러했듯이 융가이 마을은 평화로웠다. 양키우기 실습을 위해 산 중턱에 오른 아이들 100여 명만이 생존자의 전부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을과 가족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페루 대통령은 희생자 발굴을 중지하고 이곳을 거대한 무덤으로 선포했다. 2만 명이 묻힌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와 있는 줄 몰랐다니. 한심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우람하게 보였던 폭포에 오르니 이놈은 작은 개울에 불과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거의 다 왔다는 대답을 했다. ‘산에 오면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가 되나 봐’ 폭포를 지나면 다 온 줄 알았는데 또 평야가 펼쳐졌다. 초원 끝 저 멀리 가파른 절벽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르고 있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사람들이 보호색을 띠고 숨어 있었다.
온몸이 독립선언을 했다. 반란의 주동자는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였다. 그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다. ‘돌아가자 이만하면 잘한 거야.’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이러다 69세까지도 못 살지 몰라.’ 칭찬과 협박이 계속되었다.
절벽에 올라서자 두 독일인 청년이 내려왔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죠?”
“다 왔습니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됩니다.”

첫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큰 성공은 작은 성공을 딛고 일어선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