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③ 지금 미루고 있는 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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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나는 이 멋지고 가슴 설레는 여행을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용의 문제도 그러하거니와 안전은 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여행의 동반자를 찾아 나섰다. 어차피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 여행이 시작되었으니 대상은 50대와 60대로 정했다. 나의 눈이 먹잇감을 찾는 매처럼 버스에서 동료를 구하는 쪽으로 향했다. 나의 여행 계획을 들은 많은 사람이 동감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처한 현실의 벽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상인 사회다. 내가 이상한 놈 일게다.

예전에 「벼룩이 훈련법」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벼룩을 유리병에 넣고 뚜껑 대신 유리판으로 덮어 놓는다. 처음에 벼룩들은 뚜껑이 없는 줄 알고 뛰쳐나가려 힘차게 뛰어오른다. 뛰어오른 벼룩들이 유리판에 머리를 부딪친다. 아프겠지? 이제 유리병의 유리판을 없앤다 해도 벼룩은 병을 탈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나의 도전을 부러워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현실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택하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높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은 미래에 대한 경제적인 불안이었다. 놀라운 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마저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온통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귀결되어 있었다. 노후는 경제력이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돈을 모으는 이유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라고 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할 거라는 논리다. 그래서 지금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할 수 없는 문제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유리천장이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고 있다. 언제까지 행복을 미룰 것인가.



“너는 노후준비 끝냈나 보다.”

한 친구가 여행을 가자며 조르는 나에게 말했다. 아마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됐느냐는 질문 일게다.

“노후 준비? 돈은 많지 않아. 하지만 끝냈어. 여행작가를 하며 살 거니까. 너는 뭐 하면서 살 건데?”

여행의 동료를 구하는 일은 중고 마을버스를 찾는 일보다 더 비관적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어느 신문의 기사를 내밀었다.

“여기 여행작가학교 학생 모집 기사가 났어. 한번 봐봐.”

눈이 번쩍 뜨였다. ‘맞아 여기 가서 여행의 동반자를 찾아보는 거야.’ 불순한 동기가 학교 입학을 재촉했다. 멀쩡하게 직장에 잘 다니는 친구들에게 사표 내라고 쫓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전은 아주 주효해 보였다. 에서 만든 에 입학을 하니 이들의 관심은 오직 ‘여행’이었다. 13주 동안의 교육을 마치고 종강을 하는 날 나에게 여행자를 모집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일명 ‘쫑파티’ 종강 파티가 있었다. 취기가 돌자 나는 나의 세계일주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함께 하실 분이 있으면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 무려 10명 이상이 손을 들었다. ‘이거 여행에 미친 사람들 아냐?’ 결국, 이들의 의지는 술이 깨는 것과 같은 속도로 접혔다.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은행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O씨와 보헤미안을 꿈꾸는 주부 K씨가 여행에 합류를 약속했다. O씨는 조기 은퇴를 한 후 모든 일정을, 주부 K씨는 일부 구간을 여행하기로 했다. 목표인원 5명 중 2명이 확보되었다. 아직 더 많은 대원이 필요했다.

어느 날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K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모 경제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있었는데 점심이나 하자며 불렀다. 낮술이 몇 잔이 돌았다.

“택아, 인원 다 찼냐?”

“아니? 두 명은 구두 약속을 받았는데 아직 부족해.”

“그럼 나 끼워주라.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둘 것 같아”

아직 할 일이 많아 보이는 친구라 의심쩍었지만 일단 기쁘게 동의했다. 여행에 서광이 비쳤다. 이제 인원이 3명으로 불어났다.

그즈음 미얀마를 여행하게 되었다. 양곤의 어느 여행자 숙소에서 나는 네 번째 지원자인 J씨를 만났다. 당시 나는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마을버스의 세계 일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내의 말로는 잠꼬대할 때에도 마을버스 세계 일주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하루는 숙소에서 아침을 먹는데 머리를 빡빡 깎으신 분이 요리해서 내놓았다. 해산물 요리였는데 어찌나 음식을 맛깔스럽게 해 왔는지 그만 숙소 주인으로 착각을 했다. 여기서도 나의 여행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J씨가 입을 열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직업은 요리사입니다. 저도 그 여행에 합류하면 안 될까요?”

“당연히 되죠.”

“저는 일산에서 한우 전문식당을 합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은 책임지겠습니다.”

장기 여행에서 꼭 필요한 요리사가 여행 의사를 밝혔다. 그의 나이 62세였으니 내가 그토록 찾던 60대가 아니던가. 이제 여행팀이 단단하게 꾸려지기 시작했다.

지원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보험회사의 중진이었던 후배 J가 직장의 고단함을 토로하던 중 여행 의사를 밝혔다.

“에이 더러워서 못하겠어요.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갑시다.”

여행의 동기가 막연한 현실 도피 같아 보였다. 어찌했던지 그토록 동행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웠는데 이토록 쉽게 해결될 줄이야.

2013년 8월 20일 저녁. 를 희망하는 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여행 계획서를 만들어 그들에게 브리핑했다. 모두가 행복했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모두 세계 일주라는 일생의 꿈을 달성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당장 여행을 떠나도 되는 양 용기가 넘쳤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 역력했다.

“여러분 우리 이 여행의 이름을 지으면 어떨까요?”

참석자 중 한 분이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모두 그게 좋겠다며 각자의 의견을 냈지만 신통치 않았다.

“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내가 제안을 했다.

“버세프? 무슨 뜻일까요?”

“의 줄임말입니다.”

“발음도 나쁘지 않은데? 버세프그럴듯해.”

이렇게 하여 우리 여행단의 이름이 로 정해졌다. 회의가 끝나고 회식이 있었다. 이 팀의 한 가지 우려 사항이라면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이다. 술이 여러 잔이 순식간에 돌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이때 어느 누군가가 제안을 했다.

“우리 정말 떠나는 거 맞지? 그럼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의미로 내일까지 백만 원씩 걷기로 하자.”

“그래 그래야 책임감도 생기고 좋지. 중간에 포기하면 이 돈은 돌려주지 않는 거로 하고.”

“좋아, 좋아. 그럼 이 돈을 ‘맹세금’이라고 이름 붙이면 어때?”

“맹세금?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거 좋다 맹세금”

O씨는 금융인답게 그 자리에서 100만 원을 이체했다. 다른 사람들도 약속한 다음 날까지 맹세금을 입금하였다. 여행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맹세금까지 다 걷혔으니 여행 동행자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여행 전체를 본다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와 같다고 할까? 나는 이 자리에서 버세프팀의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수년간 고민하고 추진해 왔던 공로를 인정받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만 할 일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배우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을버스 여행의 철학을 온전히 받아들였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행을 앞두고 가장 의욕을 보였던 요리사 J씨가 어느 날 소식이 끊겼다. 그는 여행의 성공을 위해 섬진강 종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멋진 도전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사라진 것이다. 두 달이 지난 어느 겨울 여행 포기를 어렵게 전했다. 섬진강 도보 종주를 하며 그만 고관절을 다친 것이다. 게다가 논설위원 K와 보험회사에 다니던 J 후배도 자녀들의 교육과 사업상의 이유로 여행을 접었다. 맹세금을 고스란히 남겨 둔 채 말이다.

은행을 다니던 O씨가 사표를 낸 것은 이들의 포기 선언 이전이었다. 이제 고민은 우리 두 사람의 몫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우리의 여행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O씨에게 말했다.

“형님 그냥 떠납시다. 떠나면서 생각하죠. 뭐”

“그럽시다”

간결하고 단순한 대답이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쩌면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루어 놓은 그 계획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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