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산사로 떠나는 여행

천삼백여 미터 수도산 꼭대기의 수도암
인현왕후가 인고의 시간을 지내며 걸었다는 인현왕후길
숨겨진 비경을 간직한 청정도량 청암사
황악산 기슭의 동국 제일 가람인 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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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 in 신영내 기자] 호젓한 산자락, 곱게 물든 단풍,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 비가 날리는 가을빛 머금은 산사로 여행을 떠난다. 생기 있었던 잎새도 긴 여름을 지나 가을임을 알고 가장 화려한 옷을 입는다. 한 템포 느린 걸음으로 쉼표 같은 하루를 가을로 채운다.

천삼백여 미터 수도산 꼭대기의 수도암

통일신라 헌안왕 3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수도암을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기는 하나 아름드리나무가 줄지어 있어 입구부터 가을의 깊은 정취가 느껴진다. 대적광전의 석굴암 본존에 버금갈 정도로 우수한 비로자나불 좌상과 약광전의 석불좌상, 삼층 석탑 등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암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큰 절이다. 대적광전 뜨락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연화봉은 마치 한 떨기 연꽃과 같다.

인현왕후가 인고의 시간을 지내며 걸었다는 인현왕후길

수도암에서 잠시 내려와 만나는 인현왕후 길은 지난 8월 문화체육 관광부와 한국 관광공사가 추천하는 ‘8월의 걷기 여행길’로 선정된 곳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산한 그곳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두 시간 정도 길게 이어지는 수도산 단풍길은 걷는 내내 낙엽 밟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알록달록 물든 울창한 숲이 눈을 즐겁게 한다. 길 입구와 출구의 비탈 이외에는 거의 평지로 이어져 산행이 어려운 사람이 가을을 느끼며 걷기 좋다. 인현왕후의 숨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지친 마음은 자연 속에서 정화된다.

황악산 기슭의 동국 제일 가람인 직지사

정종 대왕의 어태가 안치되어 있고 사명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유명한 직지사는 시원하게 펼쳐진 황악산 아래 수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각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청아한 독경소리는 불자가 아니어도 마음이 맑아진다. 경내 곳곳에 나있는 작은 물줄기의 소리를 따라 들어가면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삼존불 탱화, 삼층석탑을 비롯해 천불전을 보게 된다. 천불전 불상 중 벌거숭이 동자승을 찾아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직지사 앞 직지문화공원의 넓은 잔디밭에는 인공분수를 비롯하여 17개국 조각가의 5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숨겨진 비경을 간직한 청정도량 청암사

인현왕후 길로 통하는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학하는 청정도량이다. 폐위된 인현왕후가 3년간 은거하며 기도한 곳이다. 입구에서 보았던 작은 폭포에서의 느낌 그대로 맑고 아담한 절이다. 청암사는 직지사의 말사로 비구니 승가대학까지 갖추고 있다. 치열한 당쟁 속에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인현왕후가 기거한 극락전의 운치 있는 한옥의 모습은 사찰과도 잘 어울린다.

어느 계절보다도 빨리 가버리는 가을,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사의 여정은 팍팍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만큼 아름답고, 무디었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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