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가녀린 것들이 숨 막히게 빼곡하다. 하얀 나무기둥과 까만 옹이 자국이 원근법을 무시한 채 선명하다. 무딘 조각칼로 새긴 양각의 판화를 보든 듯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늘을 향해 곧다. 새파란 하늘엔 우듬지들이 동그랗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새파란 캔버스에 점묘화로 노랗게 찍어 놓은 듯 이파리들이 소곤댄다. 시샘하는 바람이 불어 꽃눈개비 되어 날린다. 이 숲에서 영영 길을 잃고 싶다.
하늘의 천사가 꽁꽁 얼어 있는 자작나무를 보았다. 천사는 살며시 내려와 자신의 흰 날개로 나무 기둥을 감싸주었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순백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동화를 생각하며 숲 속 오솔길을 걷는다. 천사의 날개 같은 나뭇결을 쓸며 감촉을 나눈다. 반달 눈썹 같은 옹이 자국이 참 많다. 높이높이 자라기 위해 스스로 잔가지를 떨어낸 흉터다. 동그란 눈동자를 깜빡일 것 같은 옹이 자국을 쓰다듬는다. 나무도 포식자가 자신의 잎을 먹어 치우는 소리를, 그 진동을 듣고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방어태세로서 반응한다고 한다. 자작나무가 우리에게 어떻게 감응했을지 궁금하다면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