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정취를 느끼며 구례 운조루 고택에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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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시골 오일장에 가거나, 이웃집에 가실 때도 할머니는 무척이나 단아하고 고왔다. 하얀 고무신, 참빗, 곱게 단장한 머리에 비녀. 운조루의 첫인상은 비녀를 꽂은 할머니다. 내가 그리워하던 할머니의 잔상이 밀려왔다. 얼굴에 주름은 어쩔 수 없지만 고운 모습이다.

운조루는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호남의 대표적인 고택이다.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 류이주가 건축했다. 풍수지리상 명당자리인 운조루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과 구름 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이다.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온 ‘타인 능해’ 정신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높게 평가된다. 운조루의 역사와 생활상은 유물전시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할머니, 대문, 작은 창틀, 맷돌, 수동탈곡기. 오래된 기억들이 돋아난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시골에서 자랐다. 시골의 풍경은 바빴고 재미있었고,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너무나 애잖은 추억이다. 나는 가끔 남자가 아닌가 생각했다. 너무 씩씩했고, 거침이 없었던 것 같다. 뒷산에 올라 소먹이를 주고, 나무 땔감을 주웠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이가 많았던 시골은 늘 일손이 필요했다. 우리는 기꺼이 일꾼이 되었고, 장난기 어린 모습의 귀한 아들, 딸이 되었다.



운조루에 나무 지게가 보인다. 유독 나는 아빠를 졸졸 따라다녔다. 산에 나무하러 갈 때, 시장 갈 때, 탁주를 사러 가실 때도, 송아지를 팔러 갈 때도. 30년이 지난 지금에 깨달았다. 그때는 있는 그대로를 살았던 것 같다. 가난했지만, 가난만 했던 게 아니었다. 가난은 소소한 추억 앞에서 초라해진다. 부엌으로 들어가니 ‘타인 능해’가 있다.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 독에 누구나 쌀을 쉽게 가져가도록 가득 채워 놓았다는 나눔의 정신이 깃든 ‘쌀 뒤주’다. 쌀을 가득 채우고, 쌀을 욕심 없이 가져가는 사이 감사와 온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그랬다. “손해 본 듯 살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다시 돌아온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공감한다.



가마솥 아궁이를 보니 젊었던 엄마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아침이면 부엌으로 달려갔다. 장작불에 고슬고슬한 밥이 다 되면, 그릇에 밥을 푸기 시작하는데, 그다음이 중요하다. 가마솥의 누룽지는 노릇노릇 바삭바삭 고소했다. 최고의 간식이었다. 아침밥보다 누룽지를 좋아했던 나는 부지런히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바쁜 엄마를 도와주며 맛있는 누룽지를 먹었더랬다. 운조루의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모과나무에 꽃봉오리만 달렸다. 그 아래 크고 작은 장독대가 있다. 작년에 담가놓은 간장, 고추장, 장아찌 등이 있겠지? 뚜껑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간장, 고추장, 된장은 물론이고, 쌀, 보리, 콩, 과일까지 담아두던 시골 엄마의 장독대는 보물창고였지. 지금 고향 집 장독대엔 있어야 보물이 없다.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운조루의 굴뚝을 찾아라, 한참을 찾았는데 이게 굴뚝인가? 지나쳤다. 조선 시대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의 배려로 낮은 굴뚝을 만들었다고 한다. 양반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면 가난한 이웃의 마음이 불편할까 봐 낮게 지어 연기를 분산시켰다고 한다. 이웃을 위한 배려는 2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나갈 수 있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움푹 팬 마루에 봄 햇살로 온기가 느껴진다. 학교를 마치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대청마루에 누워 거친 숨을 진정시킬 때 마루는 따뜻했다. 여기서 다시 느끼다니. 마루 밑은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소다. 벼 거적때기로 가려놓고 그 뒤 숨어 한참을 헤매게 했던 시절이. 마루에서 안방을 보니, 포근해 보이는 보료가 놓여 있다. 그 옛날 사용했던 고가구와 도자기, 비단옷, 상투 모자, 꼬까신. 연지 고지 찍고 이곳으로 시집온 운조루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본다. 시집올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좋았을까? 양반집에 시집와서 힘들지는 않았을까?



운조루는 지난 시간을 거슬러 나를 3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곱디고왔던 할머니

젊고 건강했던 부모님

개구쟁이였던 언니, 오빠

시골의 산과 들

대청마루

그 시절처럼 봉우리는 봉우리로, 만발한 꽃은 꽃대로, 있는 그대로가 좋았던, 받아들였던, 그 시절에 나.

운조루의 동백, 산수유, 매화, 앵두나무 꽃은 지금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매년 사람들의 추억을 되돌려 놓겠지.

당신은 몇 살에 모습으로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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