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 ⑫ 계획한 대로 된다면 여행이 아니다

남미 페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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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리마를 빠져나오자 바로 사막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환경이다. 태평양에 떨어진 빛들이 어찌나 반짝이며 튀어 오르는지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찌 보면 잘게 부숴놓은 유리 조각에 빛이 반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첫날밤을 지내려는 곳은 이카(Ica)라는 도시다. 이카는 와카치나(Huacachina)라는 오아시스 마을이 있어 유명한 도시다. 이카는 페루의 수도 리마로부터 약 300km 떨어져 있는 메마른 도시다. 승용차라면 4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은수로는 어림도 없는 시간이었다. 은수는 아직 시속 60Km의 속도도 버거운 상태였다. 도로는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 도로의 이름을 ‘팬 아메리카나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북미와 중남미를 관통하는 도로를 그렇게 부른다.

이 도로를 따라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육지의 끝에 도달한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거친 황야에 거대한 모래언덕들을 만들어 놓았다. 언덕에 오르면 바람의 기세는 절정이다. 자연도 텃세하나보다. 세찬 바람이 달리는 은수를 후려치고 달아나곤 했다. 이 때 마다 은수는 맥없이 휘청거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단조로운 풍경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가끔 사막 멀리 검은 지붕을 한 단층 건축물들이 보였다. 검은 비닐로 덮어 놓은 ’비닐하우스’ 같이도 보였다. 이 건물을 두고 일행들의 해석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닭을 키우는 곳이라 했고 어떤 이는 광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사막의 찌는 더위와 사정없이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볼 때 어느 것 하나도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이카로 향하며 몇 개의 작은 도시를 지나게 되었다. 도시는 규모만 다를 뿐 우리가 묵었던 리마의 변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은 무질서했고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도로를 횡단했다.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지만, 사람들은 노련한 곡예사처럼 피해 다녔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작은 상점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낯 설은 장면과 마주쳐야 했다. 아무리 작은 상점이라도 굵은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예외 없이 작게 뚫어 놓은 창문을 통해 물건을 사야 했다. 주인은 작은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주위를 살핀 다음 주문을 받았다. 창문 안으로 돈을 넣어야만 물건이 나왔는데 이런 일은 여행 내내 보게 되는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두려움이 묻어 나왔다.

리마를 떠나 남미여행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일행들은 모두 묘한 긴장감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여행을 준비하며 들었던 두려운 이야기들이 어쩌면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은 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아주 가끔 산간지방에서 온 듯한 인디오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디오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도시에 나타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깊은 산간지대에서 자급자족하며 전통적인 삶을 지키고 살아간다. 주로 감자와 옥수수를 재배하고 야마를 키우며 살아간다.

여자들은 대부분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저 모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보는 코끼리를 먹은 보아 뱀을 닮아서”

키득대며 웃느라 그만 먹고 있던 과자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들이 쓰고 있던 모자는 둥그런 모양을 따라 좁은 창이 만들어져 있고 머리를 덮는 부분은 볼록하게 튀어 올라 전체적인 균형감이 없어 보였다. 머리는 한결같이 양쪽으로 땋아서 등 뒤로 늘어뜨렸는데 뒤에서 보면 나이를 알기 힘들었다. 모자의 형태도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나이가 어린 여인일수록 창이 넓고 화려했다. 나이든 여자들의 모자는 단조롭고 어두운 색이 많았다. 이러한 모자의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었다.

인디오 여인들의 신체적인 특징도 뚜렷했다. 작은 키에 짧은 다리 그리고 크고 두꺼운 가슴과 큰 엉덩이가 다른 나라의 종족과 확연히 달랐다. 이러한 신체적인 특징은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생활터전이 높은 산악지역이다 보니 공기가 희박하다. 적은 산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폐와 심장이 발달하였다. 키가 클 경우 산소를 몸 구석구석까지 운반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신체구조는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적화 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짧은 다리와 큰 엉덩이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기에 적합해 보였다.

이에 반하여 스페인과의 혼혈족인 메스티소들은 체형이 서구인들에 가까웠다. 메스티소들은 주로 도시에 살며 나라의 경제권을 쥐고 있다. 높은 교육과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자부심이 아주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메스티소들의 슬픈 역사는 또 하나의 그늘이다. 수백 년 간의 스페인 통치는 인디오의 삶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인디오들의 희생을 통해 스페인은 세계를 호령했다. 이러한 스페인은 메스티소들의 또 다른 줄기의 조상들이다. 조상의 한줄기는 착취를 당한 인디오이며 또 한 줄기는 착취했던 스페인 사람들의 혈통이다. 메스티소들의 슬픈 정체성이다.

오후 4시경 목적지인 이카에 도착 했다. 이카는 사막에 있는 작은 도시다. 시 외곽에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이 있다. 우리가 묵으려고 했던 곳이다. 그런데 우리의 길잡이가 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했다. 차를 여러 번 돌려 입구를 찾으려고 했으나 헷갈린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분명히 이 길이었는데….”

길을 모르는 우리야 별수 없이 그만 바라보아야 했다.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간단한 일인데 그는 우리를 이리 저리로 끌고 다녔다.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저 사람들은 다 알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아도 권위란 이렇게 일을 꼬이게 만든다. 남미 전문가로 소개만 되지 않아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와카치나 입구를 한 시간이 넘도록 헤매고 있다.

“여기서 나스카까지 얼마나 걸리죠? 가까우면 나스카에 가서 잡시다.”

와카치나를 가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거대한 모래 언덕에서 보는 일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헤치며 오느라 지쳐있었다.

“나스카까지는 두 시간 거리입니다. 그냥 거기로 갈까요?”

“그럽시다. 어차피 남미일주하고 이곳을 또 지나야 하니까 이카는 그때 보면 되잖아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나스카로 가자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다. 여행 첫날 첫 번째 일정이 어긋났다. 남미 전문가의 권위에 작은 흠집이 생겼다.

나스카에 도착한 것은 밤이 꽤 깊어서였다. 사막에서 지내는 첫 밤이다. 나스카는 누가 그려 놓았는지 모를 사막의 그림들로 유명한 곳이다. 새, 물고기, 사람, 곤충 외에도 알 수 없는 창작의 벌판이다. 아직도 이 알 수 없는 짓거리에 대해서 시원스럽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은 온종일 먹은 것이 없었다. 밤이 늦어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다. 모두가 흩어져 먹을 거리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무슨 고기인 줄 모르는 튀긴 음식을 먹고 차로 돌아왔다. 여행 첫날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바로 잠자리 문제였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아내를 데리고 왔다. 원래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는데 아내가 따라나선 것이다. 이것은 여행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들과 산에서 잠을 자기 위해 차를 개조하고 캠핑 장비를 챙겨왔다. 15개이던 버스의자 중 뒷좌석 9개를 떼어내고 침상을 만들었다. 좁게 자면 6명까지 취침할 수 있었지만, 여자를 재울 곳은 없었다. 불편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 저녁이면 두 사람을 위해 호텔을 찾아야 했고, 이들이 투숙을 마친 후에야 나는 잠자리를 찾아 산과 들로 나서야 했다. 운전해야 하는 나는 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밥을 해 먹어야 했고, 호텔로 픽업을 나가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자고 먹는 것을 차에서 모두 해결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에 큰 차질이 왔다. 여행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로 큰 낭패를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여행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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