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⑥ 나의 동반자 그녀의 이름은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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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이 여행의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은수’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은수는 나와 함께 세계를 일주한 마을버스의 이름이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이름이라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름이 예뻐서인지 많은 사람이 나의 첫사랑이냐고 물어왔다. 은수라는 이름은 ‘은수교통’에서 왔다. 처음 버스에 이름을 지으려고 했을 때 일행들의 의견이 각기 달랐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의견이 나뉘어서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냥 은수라고 하면 어때요. 은수교통이니까 원래 이름이잖아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그것이 작고 큼에 관계없이 명분이 있으면 명쾌하다. 평생 은수교통에서 살아왔으니 은수라는 이름은 명분도 있고 이름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은수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사실 은수를 만나기에 앞서 나는 ‘옥수’를 먼저 만났었다. 옥수 교통의 옥수. 옥수는 이미 10년의 임무를 마치고 퇴직 한 차였다. 옥수를 처음 만났을 때 이루 말 할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 옥수는 나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퇴직한 마을버스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마을버스를 찾느라 무척 지쳐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간절함에서 인지 옥수와의 만남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옥수는 이미 52만km를 달린 노쇠한 차였다.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그 때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났다.

그 녀의 이름은 ‘약수’다. 약수교통. 상대가 많아지니 두 여인 사이에서 마음이 기웃거렸다. 하지만 약수도 50만km 이상의 운행경력을 가지고 있었을뿐더러 평생 산길을 운행하느라 손상이 컸다. 만약에 은수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이 멋진 여행의 주인공은 ‘옥수’나 ‘약수’가 될 뻔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내의 소개로 은수를 소개 받았기 때문이다. 은수는 험한 산길에서 살아온 옥수나 약수와는 달리 종로의 평지를 달리며 살아왔다. 혜화동의 서울대병원에서 출발한 은수는 종로5가 보령약국과 세운상가를 지나 창경궁을 거쳐 돌아오는 셔틀버스였다. 그래서인지 험한 산동네 길을 달려온 옥수나 약수에 비해 버스의 상태가 좋아 보였다. 게다가 은수의 운행기록계에는 20만6천km라고 표시되어있었다. 이미 50만km 이상을 운행한 옥수나 약수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젊고 건강한 차여서 너무나 행복했다. ‘나에게 이런 복덩이가 굴러들어 오다니’ 주저 없이 은수를 선택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페루에서 은수의 사전 점검이 있었다. 컴퓨터로 연결해 보니 은수의 실제 마일리지가 48만km라는 것을 알았다. 오래전 은수가 20만6천km를 달릴 즈음 운행기록장치가 고장이 났던 것이다. ‘기계마저 나이를 세탁하다니. 못 믿을 세상이라니까’ 은수는 아직도 그 기록에 멈춰서 있다. ‘여러분! 은수를 보십시오. 도전하면 나이가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외쳐야 할 판이다.

이렇게 은수는 나에게로 왔다. 은수를 만나고 나면서 나는 마을버스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버스는 여러 가지의 제약을 가지고 태어났다.

첫째, 평생 주어진 노선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겐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삶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 보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두발이 있어 어디든 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삶도 보이지 않는 쳇바퀴 속에서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서글픈 인생이 아니던가.

둘째, 마을버스는 시속 60km 이상의 속도로 달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속도를 내고 싶어도 은수는 그 이상을 달리지 못하도록 ‘속도제한장치’를 해 놓았다. 시속 60km 이상의 속도는 주인에게 과태료영수증을 날라 오게 하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주인은 아예 재갈을 물려버렸다. ‘너는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허용한 속도를 벗어날 수 없다’ 은수의 한계는 은수교통의 사장이 정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계는 누가 정해 놓았을까? 이 질문은 이 여행의 핵심이다. 나는 여행을 하며 늘 이야기 하고 있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마라’ 어쩌면 우리의 한계를 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일 수 있다. 은수의 속도계에는 시속 160km가 한계라고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존재는 놀랍게도 은수 자신이었다.

세 번째, 은수는 해발 1,000m 이상에서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 자동차기관은 산소와 연료가 일정 비율로 섞여 폭발한다. 이 폭발 에너지로 엔진을 돌려 차가 움직이는 것이다. 산소는 공기 중에 섞여 있는데 이 산소의 양이 고도가 높아질수록 희박해진다. 은수는 그의 인생에 높은 산을 넘거나 고속도로를 달릴 일이 없다. 그러니 고도에 따라 자동으로 산소량을 조절해 주는 장치란 은수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은수는 애초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가 평생 살아야 할 곳은 종로일대의 평지다. 이 지역은 해발 100m도 되지 않는다. 은수교통 사장의 입장에서 필요치 않은 장치를 일부러 돈을 들여 만들 필요는 없었다. 애초부터 은수의 세계 일주는 그의 인생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은수교통의 사장님은 은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은수야. 너는 내가 시키는 일만 성실하게 하다가 일생을 마치거라. 그것이 너의 성공이며 너의 인생에 주어진 유일한 꿈이다.’

이것뿐 만이 아니었다. 은수의 골격과 장기들은 평지에서 적합하도록 최적화되어 있었다. 얇은 강판, 형식적인 충격 완충장치,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문, 잘 열리지 않는 창문 등등. 하지만 세계 일주의 여정은 어떠한가. 5대륙의 험준한 산과 사막, 비포장도로와 수많은 강과 언덕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친 곳이다. 곤경 속에서 구출해 줄 정비사도 없다. 은수야 말로 나무칼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어린아이와 무엇이 달랐을까.

내 고향은 김포평야다. 우리 마을에서 보면 멀리 계양산이 보였다. 어머니의 가슴처럼 분명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계양산에 있는 조상들의 묘에 벌초하러 간 적이 있었다. 벌판을 지나는 데 반나절이나 걸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산에 가까워질수록 산의 모습이 점점 바뀐다는 것이다. 결국, 산속으로 들어오니 내가 늘 보아왔던 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작은 산과 잡풀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것이 바로 산의 진정한 모습이다. 모든 일이 그와 같다.

낡은 마을버스와 함께 세계 일주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단순해 보였다. 점차 계획이 구체화 될수록 초심은 사라지고 현실이라는 놈에게 발목이 잡혀가고 있었다. 점차 떠나야 할 이유보다 떠날 수 없다는 핑계들이 늘어갔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결심했다. 은수를 우리의 인생과 같은 존재로 생각을 했다면 이 여행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야 했다. 이것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목적이 세워지자 그동안 단점으로 보였던 모든 것이 장점이 되었다. 오히려 은수의 삶과 조건이 더 나쁠수록 극복의 감동은 더 할 것이다.



은수를 단순히 ‘이동수단으로써의 탈 것’으로 생각했다면 여행은 더 단순하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고장이 나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면 언제라도 버려도 좋은 존재가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은수는 이제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은수는 모든 사람의 꿈을 싣고 달리는 희망 그 자체가 되었다. 이 여행의 성공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은수는 나의 여행 동반자였다. 그리고 나였고 한 시대를 살아온 모든 이들의 상징이었다. 은수는 낡고 거친 여행을 위해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은수는 여행 내내 많이 아팠고 괴로워했다. 은수가 고장으로 정비소에 머물게 되면 나의 온 신경이 거기에 미쳐 있었다. 그때 마다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비소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우리는 늘 함께 있었고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어느덧 나는 그로부터 전해 오는 작은 떨림에도 지나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완전한 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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