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를 걷는 사이사이 38선을 알리는 표지목을 만났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적인 38선이 이곳에서는 단지 이정표에 불과했다. 우리는 지금 이 38선을 중심으로 때로는 북쪽으로, 때로는 남쪽으로 오르내리며 걷는 중이다. 오늘 저녁은 이 산 어디 메에서 머물 예정이다. 임도를 걸었던 경험상 산의 한쪽 면을 깎아내고 8부 능선쯤 올라가는 임도는 조망이 좋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38선 표지목을 중심으로 넓을 임도 한쪽에 쪼르륵 하루 저녁을 머물 집을 지었다. 지금 우리가 머무는 곳은 북쪽이 될 수도 있고, 남쪽이 될 수도 있으며, 38선 한 가운데일 수도 있다. 생애 처음인 이 생소한 경험은 정치적인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무엇인가 묘한 쾌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낀다. 돌을 옮겨 테이블을 만들고 배낭에 넣어온 음식들을 올리니 자연 식탁이 따로 없다. 미세먼지로 인한 흐릿한 조망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산을 잘 아는 일행들이 중첩된 능선을 가리키며 ‘저기는 설악산, 저기는 점봉산..’등을 얘기해 주니 앉은 자리에서 이곳이 주는 풍경을 실컷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