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와 함께 하는 한국의 섬] 고양이를 닮은 섬, 신안 고이도

왕산성은 누가 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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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in 이승희 기자] 신안 수선화 축제를 다녀오면서 고이도란 섬을 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숙부 왕망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섬. ‘왕의 산성’이라는 의미의 ’왕산성‘과 일제강점기 말까지 ‘왕도’라고 불렸다는 섬. 고이도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고이도는 무안군 운남면 신월항에서 직선거리로 1km 남짓. 뱃길로 5분 정도 거리로 육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이다. 고려 태조의 숙부가 살던 곳이라고 하여 옛 고(古)와 섬의 형태가 사람의 귀와 닮았다고 하여 귀 이(耳)자를 써서 고이도라 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섬의 모양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하여 ’고이섬‘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지인 ‘삼국사기’ 이후 섬 지명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불린 섬은 드물다. 진도, 완도, 흑산도 정도다. 마을 단위의 작은 섬이 고대 시기 이래로 계속 등장한 사례는 고이도뿐이다. 고대 연안해로 요충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은 무안 신월항으로 갔다. 고이도는 신월항에서 정기 여객선과 마을에서 운영하는 도선이 수시로 있어 배편이 좋다. 도선 고이호를 이용해 고이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압해읍사무소 고이도출장소 김선민 선생님과 가란도보건진료소 이정옥 소장님. 그리고 재경고이향우회에서 세워놓은 고이도 표석이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고이도 선착장 한편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주낙에 미끼를 끼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서울요”, “섬에 볼 것도 없는데?” 관광지가 아닌 섬에 가면 첫 대화가 이렇다. 고이도는 농사와 함께 염전, 새우양식장, 김 양식을 한다. 또한, 낙지잡이로 소득을 많이 올리는 섬이다. 낙지로 유명한 섬이라 낙지잡이 미끼인 줄 알았는데 주꾸미 낚시 미끼라고 했다.

고이도 선착장에서 진변마을로 들어가니 학교가 보인다. 학교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폐교는 되지 않은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문에는 ’압해초등학교 고이분교장은 2018.9.1.자 폐지된 학교입니다. ‘라는 노란 푯말이 세워져 있다. 우리 농어촌의 슬픈 현실을 또다시 보게 되었다.

고장마을을 지나 고이도 최고봉 왕산(해발 65.3m)에 올랐다. 왕산성은 고이도 아이들의 소풍 장소였다고 한다. 산을 오르니 북쪽으로 선도가 보인다. 서쪽으로는 고이도 염전과 병풍도, 마산도, 매화도가 보인다. 산정상에 가까워져 오자 산성의 흔적이 보였다.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산정산에는 당집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돌담이 보인다. 산 정상에 오르니 남쪽으로 압해도가 보이고, 동쪽으로 섬 맞은편 신월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당산제가 끊긴 지 반세기가 되었으나 고이도 당신은 왕건 또는 왕건의 숙부 왕망이라고 전해진다고 한다. 누군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고려의 왕족 왕씨 집안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서해의 수호신 임경업 장군과 남해의 수호신 최영 장군을 모신 당집은 많이 봤지만, 고려의 왕족 왕씨 집안 사람을 섬의 수호신으로 모신다는 것은 고이도가 처음이다.

고이도는 서남해 고대항로의 중요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해에서 올라온 배들은 북상할 때 반드시 거처야 할 바닷길이 고이도 항로였다. 최치원, 최승우가 중국 유학길에 오를 때도 이 항로를 거쳐서 갔고, 일본 고승 옌닌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 846년 고이도에 정박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산강 일대의 백제세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왕건에게도 이 뱃길은 매우 중요했다. 고이도 해로를 통해 나주에 이르는 영산강 수로와 남쪽으로는 진도로 이어진다. 고이도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며, 군사기지였다.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뿐만 아니라 함경도 녹둔도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와 택리지 저자 이중환이 개성에 잠들어 있는 조부를 풍수가 좋은 세종시로 이장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놀랐다. 고이도를 여행하면서 교통이 좋아진 현재의 우리는 조상들보다 더 좁은 공간을 더 좁은 시야로 사는 건 아닌지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하산길 가슴 뭉클한 묘지비석을 발견했다. 비석에는 “아버님 어머님/살아계실 땐 미처 몰랐습니다/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칡뿌리 씹어 다섯 자식 입에 골고루 넣어주시며/주린 배 채워 키워주셨던 부모님 은혜를/(중략)/아버님! 어머님! 사랑했습니다/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합니다/2010년 따스한 봄날에/부모님을 그리며.”라고 새겨져 있었다. 함평 모씨 가족묘지였다. 훗날 후손들이 이 비석에 새긴 글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사랑을 실천하는 집안이었다.

대촌마을 앞으로 드넓은 논과 염전이 보인다. 수로 옆으로 갈대가 바람에 춤을 춘다. 수로에 잠긴 전봇대는 등불을 달고 윤슬을 반짝인다. 대촌마을 어느 집안에 웃음소리가 들린다. 일행을 안내하는 가란도 보건소장님과 마을 어르신들의 웃음소리였다.

5년 전 고이도 보건소에서 근무했던 인연으로 마을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경남 마산 큰애기가 전라도 아짐이 되어 30년 넘게 신안의 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섬사람들은 친정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여행자도 더불어 음료수를 받아들고 섬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끼어들 수 있었다.

대촌마을에서 진변마을로 돌아오는 길, 서울은 영하의 기온인데 고이도는 영상 7도다. 역시 따뜻한 남쪽 나라가 맞다. 밭둑에는 노란 민들레꽃이 수줍은 듯 미소를 짓고, 고이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이출장소 앞마당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동백이 새빨간 불을 지피고 있다.

여행 정보

고이도에 들어가는 정기 여객선(차도선)은 무안 신월항에서 8:20, 11:30, 16:30 하루에 세 번 있다. 고이도에서 신월항으로 나올 때도 8:00, 11:20, 16:20 하루 세 번이다. 요금은 편도 2,000원. 정기 여객선 운항시간은 신안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교통정보 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신월항에서는 여객선 외에도 도선 고이호가 운항한다. 동절기에는 7:40, 8:50, 10:50, 12:00, 12:50, 13:50, 14:50, 16:40, 17:40, 9편이 운항한다. 하절기에는 18:40, 19:40 두 편이 추가되어 11편 운항한다. 요금은 왕복 2,000원.

◇ 함께 하면 좋은 여행지

– 선도 수선화축제장

고이도 인근에 선도라는 섬이 있다. 매년 4월이면 신안 수선화 축제가 열린다. ‘수선화 여인’으로 불리는 현복순 할머니(89세)의 선구자적 역할로 선도는 수선화 섬으로 탈바꿈했다. 30년 전 남편을 따라 시집인 선도로 귀향한 할머니는 집 정원과 주변 밭을 꽃밭으로 만들었다. 세계의 수선화를 수집하여, 꽃동산을 이루었다. 마을주민들도 합세하여 섬 전체를 수선화 꽃밭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신안군에서는 수선화 할머니의 이야기를 연계해 선도에 7ha의 수선화 재배단지를 조성했다.

– 기점·소악도 기적의 순례길

국내 최대 길이를 자랑하는 병풍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 노둣길.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지면 네 개의 섬은 하나의 섬이 된다. 2017년 전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어 ‘순례자의 섬’으로 주제를 정하고 주민과 함께 2년여에 걸쳐 12km 순례길을 따라서 12사도를 딴 작은 예배당 12개를 짓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같은 아름다운 ‘기적의 순례길’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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