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 in 김윤수 기자] 고도가 한껏 높아진 평창군으로 들어서자 날씨가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맑았다가 다시 흐렸다가,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못 내린 듯하다. 근 두 달째 이어진 장마, 그렇게 심술을 부리고도 여전히 미련이 남았는가. 진부나들목을 빠져나와 상원사로 가는 내내 그야말로 번뇌 가득한 날씨다.
5만 부처님이 머무는 산
연꽃 모양으로 뻗어 오른 오대산 다섯 봉우리
아닌 게 아니라 오대산은 예로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 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오대산 서대 수정암에 있는 우통수의 물맛을 충주 달천수, 속리산 삼파수와 함께 조선 3대 명수로 꼽는다고 기록했다. 를 비롯한 많은 문헌에서도 이 우통수를 한강의 시원지로 기록하고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 실측 이후 태백시 금대산 자락에 있는 검룡소가 한강 발원지가 되었지만,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고 있자니 왜 이곳에서 한강이 시작되었다 했는지 이해된다. 맑은 물 그대로 흘러 흘러 한반도 중심에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산에 사는 이에게도, 지나는 이에게도 쉼터가 되는 산
적멸보궁은 오대산 상원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축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까지 모두 다섯 군데에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에는 부처상이 없다. 부처상이라도 만날 요량으로 찾아왔다가는 붉은 방석만 보고 가야 한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수미단에 놓인 붉은 방석은 부처님 앉아계심을 상징하고, 자장율사가 묻었다는 정골 사리도 적멸보궁 뒷편 언덕 어딘가에 묻혀 있다. 매일 아침 올라와 종일 기도하고 저녁이 되어야 산에서 내려가는 불자들도 화엄 가득한 산이 지켜준다.
비로봉에서도 잔뜩 흐린 통에 상왕봉을 거쳐 북대 미륵암으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왔던 길로 내려와 상원사와 월정사까지 쉬엄쉬엄 둘러보았다. 흙먼지를 털고 월정사 적광전에서 삼배를 드리고 나오니 그제야 하늘이 갠다. 드디어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백두대간 중심에 솟아있는 오대산은 부드러운 능선을 가진 전형적인 흙산이다. 오대산 국립공원 내에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 밀브릿지약수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주차장까지는 비포장도로로 승용차 기준 20분이 소요되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지나 비로봉에 올라서는 데에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비로봉에서 상왕산, 북대 미륵암을 거쳐 임도로 하산할 경우 총 산행시간은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