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가을이면 유독 법정 스님의 글들이 살아 숨 쉬듯 가슴에 와 꽂힌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 있는가
모두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가을이 곁에 와 있건만 온전한 가을을 즐기지 못하는 요즘,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혹독한 시간이요, 또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하루를 버티면 살아내는 시간이다.
햇살 가득한 평일 오후 길상사를 찾았다. 이렇게 따뜻한 햇살이 가을이었지, 활짝 핀 꽃무릇을 보며 이게 가을 풍경이었지, 행복한 표정으로 꽃처럼 피어나는 얼굴, 이게 가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지. 길상사 곳곳에서 보고 느낀 것이 가을이었음을, 가을 안에 내가 있음에 감사했다.
백석은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자야’를 등장시켜 전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사랑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새로운 인연으로 사랑을 승화시켜 탄생된 곳이 길상사다. 순간순간 흘러가는 가을을 잠시나마 곁에 두기에 이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 있을까.